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다렸던 결과는 결국 실패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결과는 결국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을 80년으로 가정하면,
처음 20년은 그 다음의 40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그 다음의 40년은 그 다음의 20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마지막 20년은 앞의 60년간 쌓아온 노력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인생을 즐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즐기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난 아직 지구가 태양을 스물 한 바퀴 돈 만큼만 이 세상에 살아왔고, 80년을 나의 천수라고 가정하더라도 난 아직도 59년이나 남아있다.
나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인생의 초장을 살고 있을 무렵,
초장의 후반기부터 나에게 그 것들은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미시적인 가정 문제부터, 거시적인 나의 신분 문제까지. 그리고 미시와 거시 사이에는 언제나 학교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과 학력이라는 것.
학력이란, 한 개인이 뇌의 지적 능력의 향상을 위해 앎이라는 과정을 공식적인 교육기관에 자신을 의탁해 서의 참여 정도를 뜻한다. 학력은 한 개인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쓰일 수 있으며, 때때로는 그 개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있어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잣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는 다른 의미로 학력을 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내가 존경하는 그분의 이념을 받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면, 나는 21년 째 실패만을 계속해왔다. 아마 운도 없었을 것이다. 학력이 나를 뒷받침해줬을 때 나는 항상 돈의 문제에 시달렸고, 돈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때, 나는 내 학력을 더 이상 자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슈퍼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이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가정하고 있던 내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 그 길의 한쪽은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원했고 그려왔던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지로 가정한 길의 선택이 불가능할 경우 불가항력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길.
결국 나는 후자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의 상태는 상당히 절망적이다.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해도 부모의 탓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든 책임을 내 스스로 져야만 한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받는다.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트리거일 뿐이다.
결국 나는 내 책임을 돌릴 곳을 잃었다. 더 이상 핑계를 대고 싶지만, 모든 일들은 - 그 것이 실패나 성공일지라도 – 나로부터 근거하기 때문에.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외치면 돼.
나를 외치다 sung by 마야
인간의 인생은 자신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의 남의 영향을 받거나 또는 남의 제어 하에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뿐. 그렇기에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믿지 않으며, 운명을 믿지 않으며, 철저히 타인의 제어 밖에서 나라는 존재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내 자신을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등 돌린 채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켜버리고 말았다. 타인과의 공존의 필요불가결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폐쇄적 인생관에 조소를 보내는 바이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약해진 적도 없고, 뒤쳐진 적도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나는 그저 같은 나일 뿐이다, 변화하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에도 조소가 나오지만, 이 것이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패라는 것을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 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다렸던 결과는 결국 실패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결과는 결국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을 80년으로 가정하면,
처음 20년은 그 다음의 40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그 다음의 40년은 그 다음의 20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마지막 20년은 앞의 60년간 쌓아온 노력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인생을 즐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즐기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난 아직 지구가 태양을 스물 한 바퀴 돈 만큼만 이 세상에 살아왔고, 80년을 나의 천수라고 가정하더라도 난 아직도 59년이나 남아있다.
나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인생의 초장을 살고 있을 무렵,
초장의 후반기부터 나에게 그 것들은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미시적인 가정 문제부터, 거시적인 나의 신분 문제까지. 그리고 미시와 거시 사이에는 언제나 학교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과 학력이라는 것.
학력이란, 한 개인이 뇌의 지적 능력의 향상을 위해 앎이라는 과정을 공식적인 교육기관에 자신을 의탁해 서의 참여 정도를 뜻한다. 학력은 한 개인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쓰일 수 있으며, 때때로는 그 개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있어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잣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는 다른 의미로 학력을 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내가 존경하는 그분의 이념을 받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면, 나는 21년 째 실패만을 계속해왔다. 아마 운도 없었을 것이다. 학력이 나를 뒷받침해줬을 때 나는 항상 돈의 문제에 시달렸고, 돈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때, 나는 내 학력을 더 이상 자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슈퍼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이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가정하고 있던 내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 그 길의 한쪽은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원했고 그려왔던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지로 가정한 길의 선택이 불가능할 경우 불가항력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길.
결국 나는 후자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의 상태는 상당히 절망적이다.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해도 부모의 탓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든 책임을 내 스스로 져야만 한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받는다.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트리거일 뿐이다.
결국 나는 내 책임을 돌릴 곳을 잃었다. 더 이상 핑계를 대고 싶지만, 모든 일들은 - 그 것이 실패나 성공일지라도 – 나로부터 근거하기 때문에.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외치면 돼.
나를 외치다 sung by 마야
인간의 인생은 자신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의 남의 영향을 받거나 또는 남의 제어 하에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뿐. 그렇기에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믿지 않으며, 운명을 믿지 않으며, 철저히 타인의 제어 밖에서 나라는 존재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내 자신을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등 돌린 채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켜버리고 말았다. 타인과의 공존의 필요불가결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폐쇄적 인생관에 조소를 보내는 바이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약해진 적도 없고, 뒤쳐진 적도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나는 그저 같은 나일 뿐이다, 변화하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에도 조소가 나오지만, 이 것이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패라는 것을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 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인생에 있어 실패라는 것은 스스로가 정의 내린 것일 뿐, 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 것을 실패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일 수도 없다. 그리고 세상에 우리 자신보다 인간원리에 대해 뛰어난 직관력과 냉철함, 그리고 분석력을 가질 수 있는 타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스스로에게 일어난 실패로 인해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맞보더라도 거기서 실패하지 않기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해묵은 속담이 있다.
그저 쓸데 없는 소리일 뿐이다.
실패는 물론 다음 번 시도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지만,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인생에 성공이라는 것은 단 한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 중, 경제적으로나 명예적으로, 아니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그 들은 그 전까지 실패라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인생을 실패했다고 느끼는 자들에게,
인생에서 성공은 단 한 번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성공을 경험하기 전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거칠고 힘든 난관이 닥쳐와도, 그 것을 실패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는 좌절감을 맛 보더라도, 그 것은 단지 당신이 걸어가는 당신만의 길의 중간에 서있는 이정표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진정시킬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일탈을 한 뒤에 다시 내 길을 걸어가보도록 해보자.
나는 단지 내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 돼.
인생에 있어 실패라는 것은 스스로가 정의 내린 것일 뿐, 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 것을 실패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일 수도 없다. 그리고 세상에 우리 자신보다 인간원리에 대해 뛰어난 직관력과 냉철함, 그리고 분석력을 가질 수 있는 타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스스로에게 일어난 실패로 인해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맞보더라도 거기서 실패하지 않기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해묵은 속담이 있다.
그저 쓸데 없는 소리일 뿐이다.
실패는 물론 다음 번 시도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지만,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인생에 성공이라는 것은 단 한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 중, 경제적으로나 명예적으로, 아니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그 들은 그 전까지 실패라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인생을 실패했다고 느끼는 자들에게,
인생에서 성공은 단 한 번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성공을 경험하기 전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거칠고 힘든 난관이 닥쳐와도, 그 것을 실패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는 좌절감을 맛 보더라도, 그 것은 단지 당신이 걸어가는 당신만의 길의 중간에 서있는 이정표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진정시킬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일탈을 한 뒤에 다시 내 길을 걸어가보도록 해보자.
나는 단지 내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