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리듬

2009/06/16 21:23 | Posted by 스프링데일
바이오리듬은 인체에 신체,감성,지성의 세가지 주기가 있으며 이 세가지 주기가 생년월일의 입력에 따라 어떤 패턴으로 나타나고 이 패턴의 조합에 따라 능력이나 활동 효율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신체(Physical cycle)은 23일, 감성(Emotional cycle)은 28일 그리고 지성(Intellectual cycle)은 33일을 주기로 한다. 원래는 19세기에 빌헬름 플리스라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열병의 발생을 연구하면서 인체에 23일과 28일 주기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알프레드 텔쳐가 그의 학생들을 연구하여 지성의 33일 주기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이오리듬은 한날에 태어난 모든 사람을 같은 리듬으로 보고 주기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며 입증하는 자료로서 제시하는 내용이 일화적이며 숫자에 관련된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는등 과학으로 보기에 대단히 미흡하다. 그래서 현재 바이오리듬은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의사 과학으로 일종의 점이며, 사이비 과학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여성의 일반적인 생리주기인 28일과 감성리듬이 비슷하여 참고하기에 편리하다.

최근 들어서 오늘만큼 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던적이 없었다.  내 이성은 감정에 대한 무력함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것은 단지 인식일 뿐, 난 그저 제멋대로 폭발하는 내 감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내 감정을 3인칭으로 의인화하여 나타내는 것도 지금 내 이성과 감정이 서로 따로 놀고 있음을 뜻한다.  길지 않은 8시간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폭발하는 감정으로 인해 주변의 인간관계를 하나씩 차례차례 망가뜨려갔다.

나는 무신론자이며 설령 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신의 존재는 인간들이 빚어낸 허상의 인공적인 것, 또는 인간 그 자체가 신격화된 것을 신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 세상 어디에서도 내가 내 자신을 의탁, 또는 의존할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만을 믿을 뿐이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단' 또는 '사이비'로 간주하는 운세나 바이오리듬, 타로카드등에 매력을 느낀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나름대로는 역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점성술을 제외한 주역같은 고대 지성인들의 기억이 집대성된 학문들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믿고싶어하는 것을 골라가면서 믿어볼 뿐이다.  다만, 운세에 대해서는 주로 인간의 생년월일, 혈액형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근원은 '인간' 또는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근거한 것들에 좀더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것들 또한 단순한 오락일 뿐이라고 치부해왔다.  운세에 좋은 것이 나오면 그냥 기분 좋고, 재수없는 것이 나오면 기분이 나쁘고.  또, 해설에서 특정 일의 행동에 대한 지침이 나와있으면, 나는 그 것을 내 재량껏 필요한 상황에서만 적용하고는 했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아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에 관련된 모든 결과와 결과물들은 나를 근원으로 하고왔다고 믿어왔다.

그랬던 내가 나 자신도 한심할 정도로 이상한 감정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못해 나는 결국 오늘 바이오리듬에 나를 의존하고 말았다.  아니, 바이오리듬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의나 자신을 존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느껴왔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나의 바이오리듬은 신체 감정 지성 지각 중, 신체와 지극리듬의 수치는 월등햇고 지성지수는 괜찮다고 부를 수 있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감정은 평균점 (0) 밑으로 내려간 마이너스의 한 가운데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감성 부분의 해설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당신의 감성 리듬은 현재 '-62.35'으로 기력 침체
모든 일에 소극적이다. 인내나 창조력을 요하는 일을 피한다. 대인관계와 게임에 깊이 개입하지 말고 안정을 취할 것.

10일 동안 80시간을 일했다.  집에서 한 작업까지 통하면 70시간을 더해 150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잠과 약간의 사교생활을 제외한 모든 것을 '돈'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동에 퍼붓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10일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서 있는 지금 시점에 나는 내가 길지 않은 지난 10일간 도데체 무엇을 해왔느닞 되돌아봤다.  하지만 그 곳에는 그저 다람쥐가 챗바퀴를 돌 듯 똑같은 작업과 똑같은 시간소비, 똑같은 기력 소비의 스케쥴이 '너는 그저 똑같은 챗바퀴만 똑같은 방법으로 열번이나 돌았을 뿐이야' 라고 말하며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나아가서, 모든 것이 마무리될 뻔했던 올해의 6월에 나는 내 인생에 결착점을 찍지 못하고 그저 방황만 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돈이나 새로운 사람일까?
지금의 나는 위에 열거한 것들과 그 것들에 관련된 것들 중 무엇 하나 원하지 않는다.

힘내자 앞으로 2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무 걱정 없이 딱 1주일만 쉬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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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 VI - 나를 외치다

2009/06/02 05:30 | Posted by 스프링데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다렸던 결과는 결국 실패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결과는 결국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을 80년으로 가정하면,
처음 20년은 그 다음의 40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그 다음의 40년은 그 다음의 20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마지막 20년은 앞의 60년간 쌓아온 노력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인생을 즐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즐기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난 아직 지구가 태양을 스물 한 바퀴 돈 만큼만 이 세상에 살아왔고, 80년을 나의 천수라고 가정하더라도 난 아직도 59년이나 남아있다.

나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인생의 초장을 살고 있을 무렵,
초장의 후반기부터 나에게 그 것들은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미시적인 가정 문제부터, 거시적인 나의 신분 문제까지.  그리고 미시와 거시 사이에는 언제나 학교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과 학력이라는 것.

학력이란, 한 개인이 뇌의 지적 능력의 향상을 위해 앎이라는 과정을 공식적인 교육기관에 자신을 의탁해 서의 참여 정도를 뜻한다.  학력은 한 개인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쓰일 수 있으며, 때때로는 그 개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있어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잣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는 다른 의미로 학력을 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내가 존경하는 그분의 이념을 받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면, 나는 21년 째 실패만을 계속해왔다.  아마 운도 없었을 것이다.  학력이 나를 뒷받침해줬을 때 나는 항상 돈의 문제에 시달렸고, 돈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때, 나는 내 학력을 더 이상 자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슈퍼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이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가정하고 있던 내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 그 길의 한쪽은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원했고 그려왔던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지로 가정한 길의 선택이 불가능할 경우 불가항력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길.
결국 나는 후자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의 상태는 상당히 절망적이다.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해도 부모의 탓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든 책임을 내 스스로 져야만 한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받는다.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트리거일 뿐이다.

결국 나는 내 책임을 돌릴 곳을 잃었다.  더 이상 핑계를 대고 싶지만, 모든 일들은 - 그 것이 실패나 성공일지라도 – 나로부터 근거하기 때문에.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외치면 돼.
나를 외치다 sung by 마야

인간의 인생은 자신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의 남의 영향을 받거나 또는 남의 제어 하에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뿐.  그렇기에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믿지 않으며, 운명을 믿지 않으며, 철저히 타인의 제어 밖에서 나라는 존재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내 자신을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등 돌린 채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켜버리고 말았다.  타인과의 공존의 필요불가결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폐쇄적 인생관에 조소를 보내는 바이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약해진 적도 없고, 뒤쳐진 적도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나는 그저 같은 나일 뿐이다, 변화하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에도 조소가 나오지만, 이 것이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패라는 것을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 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다렸던 결과는 결국 실패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결과는 결국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을 80년으로 가정하면,
처음 20년은 그 다음의 40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그 다음의 40년은 그 다음의 20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마지막 20년은 앞의 60년간 쌓아온 노력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인생을 즐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즐기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난 아직 지구가 태양을 스물 한 바퀴 돈 만큼만 이 세상에 살아왔고, 80년을 나의 천수라고 가정하더라도 난 아직도 59년이나 남아있다.

나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인생의 초장을 살고 있을 무렵,
초장의 후반기부터 나에게 그 것들은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미시적인 가정 문제부터, 거시적인 나의 신분 문제까지.  그리고 미시와 거시 사이에는 언제나 학교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과 학력이라는 것.

학력이란, 한 개인이 뇌의 지적 능력의 향상을 위해 앎이라는 과정을 공식적인 교육기관에 자신을 의탁해 서의 참여 정도를 뜻한다.  학력은 한 개인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쓰일 수 있으며, 때때로는 그 개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있어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잣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는 다른 의미로 학력을 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내가 존경하는 그분의 이념을 받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면, 나는 21년 째 실패만을 계속해왔다.  아마 운도 없었을 것이다.  학력이 나를 뒷받침해줬을 때 나는 항상 돈의 문제에 시달렸고, 돈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때, 나는 내 학력을 더 이상 자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슈퍼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이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이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가정하고 있던 내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 그 길의 한쪽은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원했고 그려왔던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지로 가정한 길의 선택이 불가능할 경우 불가항력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길.
결국 나는 후자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의 상태는 상당히 절망적이다.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해도 부모의 탓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든 책임을 내 스스로 져야만 한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받는다.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트리거일 뿐이다.

결국 나는 내 책임을 돌릴 곳을 잃었다.  더 이상 핑계를 대고 싶지만, 모든 일들은 - 그 것이 실패나 성공일지라도 – 나로부터 근거하기 때문에.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외치면 돼.
나를 외치다 sung by 마야

인간의 인생은 자신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의 남의 영향을 받거나 또는 남의 제어 하에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뿐.  그렇기에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믿지 않으며, 운명을 믿지 않으며, 철저히 타인의 제어 밖에서 나라는 존재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내 자신을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등 돌린 채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켜버리고 말았다.  타인과의 공존의 필요불가결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폐쇄적 인생관에 조소를 보내는 바이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약해진 적도 없고, 뒤쳐진 적도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나는 그저 같은 나일 뿐이다, 변화하는 완전함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에도 조소가 나오지만, 이 것이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패라는 것을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 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인생에 있어 실패라는 것은 스스로가 정의 내린 것일 뿐, 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 것을 실패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일 수도 없다.  그리고 세상에 우리 자신보다 인간원리에 대해 뛰어난 직관력과 냉철함, 그리고 분석력을 가질 수 있는 타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스스로에게 일어난 실패로 인해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맞보더라도 거기서 실패하지 않기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해묵은 속담이 있다.
그저 쓸데 없는 소리일 뿐이다.

실패는 물론 다음 번 시도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지만,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인생에 성공이라는 것은 단 한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 중, 경제적으로나 명예적으로, 아니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그 들은 그 전까지 실패라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인생을 실패했다고 느끼는 자들에게,
인생에서 성공은 단 한 번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성공을 경험하기 전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거칠고 힘든 난관이 닥쳐와도, 그 것을 실패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는 좌절감을 맛 보더라도, 그 것은 단지 당신이 걸어가는 당신만의 길의 중간에 서있는 이정표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진정시킬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일탈을 한 뒤에 다시 내 길을 걸어가보도록 해보자.
나는 단지 내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 돼.

인생에 있어 실패라는 것은 스스로가 정의 내린 것일 뿐, 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 것을 실패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일 수도 없다.  그리고 세상에 우리 자신보다 인간원리에 대해 뛰어난 직관력과 냉철함, 그리고 분석력을 가질 수 있는 타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스스로에게 일어난 실패로 인해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맞보더라도 거기서 실패하지 않기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해묵은 속담이 있다.
그저 쓸데 없는 소리일 뿐이다.

실패는 물론 다음 번 시도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지만,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인생에 성공이라는 것은 단 한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 중, 경제적으로나 명예적으로, 아니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그 들은 그 전까지 실패라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인생을 실패했다고 느끼는 자들에게,
인생에서 성공은 단 한 번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성공을 경험하기 전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거칠고 힘든 난관이 닥쳐와도, 그 것을 실패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는 좌절감을 맛 보더라도, 그 것은 단지 당신이 걸어가는 당신만의 길의 중간에 서있는 이정표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진정시킬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일탈을 한 뒤에 다시 내 길을 걸어가보도록 해보자.
나는 단지 내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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